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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 스토리

전, 미 백악관 차관보 강영우 박사의 기적같은 삶!

2014-01-03

14살에 시력을 잃은 강영우 박사는 한국 최초 맹인 박사로 지난 2002년 백악관 국가 장애 위원회의 정책 차관보를 역임하였다. 백악관 국가 장애 위원회의 정책 차관보로 6년간 연임 하면서 미국의 5,400만 장애인을 대변하며, 장애인의 사회 통합, 자립,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일했다.

 


1944년 경기도 문호리에서 태어난 강영우 박사는 14세 때 축구공에 눈을 맞아 망막박리로 시력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그 일을 전후로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셨다. 졸지에 어린 세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강영우 박사의 큰 누나도 봉제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을 하다 17세의 나이에 과로사로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천대와 멸시의 대상으로, 안마사나 점쟁이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운명을 거부한 소년 강영우는 재활에 온 힘을 쏟았다. 입학 기회조차 거부 당했던 강영우 박사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연세대학교에 10등으로 입학시험에 합격하였고, 4년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였다. 당시 문교부에서는 장애가 해외유학의 결격 사유로 정해져 있었다. 강영우 박사는 이 조항을 폐지하는데 일조하고, 한국 장애인 최초의 정규유학생이 되었다. 국제로타리 재단의 국제 친선 장학금 ( Rotary Foundation Ambassadorial Scholarship)과 피츠버그 대학의 장학금으로 석사, 박사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강영우 박사는 1976년 한국 맹인 최초의 박사가 되었다. 



강영우 박사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자신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그의 평생을 바쳐 노력했다.  그의 자서전 “빛은 내가슴에”는 7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국회 도서관에 음성도서 (talking book)로 소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한국의 장애인들의 인권을 제도적으로 증진시키고, 국제적 교류를 통해 장애인의 재활과 사회진출을 돕고자 강영우 박사는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을 창설하였다. 



강영우 박사의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은 강영우 박사가 이사로 활동하고 있던 굿윌 인더스트리와 함께 한국 굿윌을 창설하였다. 한국 굿윌은  장애인과 사회 소외계층의 직업창출 및 직업재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UN 세계 장애위원회의 부의장으로  역임하면서 강영우 박사는 루즈벨트 장애인상 제정을 제안하고 창설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상은 지난 82년 유엔이 채택한 “장애인 행동 계획”을 실천하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향상에 크게 노력한 나라의 국가 원수에게 수상한다. 강영우 박사는 심사위원들에게 자신의 삶을 한국 장애인 인권 증진과 복지향상의 훌륭한 예임을 강조해 한국이 루즈벨트 장애인상의 첫 수상국가가 되는데 일조하였다.



강영우 박사의 헌신적인 봉사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루즈벨트 재단의 고문, 미국 장애인협회의 이사로 재직한 강영우 박사는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 피츠버그 동문회에서 올해의 동문상, 로타리재단에서 지구촌 인권 봉사상 (Global Alumni Service to Humanity)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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